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카소네 야스히로 (문단 편집) == 평가 == 그야말로 [[1980년대]] [[일본]] 정치를 대표하는, 전후(戰後) 체제로의 전환을 본격화한 지도자. 당시에는 '''[[대통령]]적 수상(大統領的首相)'''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가 총리 재임 기간에 누렸던 막강한 권력을 빗댄 것이다. 재임 중 누적된 적자로 국가재정에 압박을 주던 전매공사(현재의 [[일본담배산업]]/JT)와 [[일본전신전화공사]](현재의 [[NTT]]), [[일본국유철도]](현재의 [[JR그룹]]) [[민영화]]를 실시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요 인물로 평가된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채택으로 [[엔화]]가 급강세를 보였고, 몇 년 못가 일본을 덮친 버블붕괴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그가 퇴임한 후 한참 뒤에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재평가 과정에서 나온 거고, '''총리 재임 당시'''에는 일본 경제가 [[80년대 일본 버블경제|절정기에 이르렀던 시절이라]] 평가는 굉장히 호의적인 편이었다. 실제로 당장 일본 수출이 줄어들 것만 기대하고 [[일본침몰]]만을 학수고대하던 서구 경제가들은 의외로 [[1989년]]까지 일본이 짱짱하게 버티면서 [[역관광]] 당하는거 아니냐고 쇼크를 먹기도 했다는 후문. 재임기에 맞이한 총선에서 사상 최대의 압승을 거두고, 전후 총리 가운데 재임기간이 네번째로 길었던 게 그냥 가능했던 게 아니다. 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추월하기 전까지는 전후 세번째 최장수 총리였으며 요시다 시게루가 2차대전 패전의 수습과 한국전쟁이라는 비상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비상 내각에 가까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이즈미 이전까지 실질적으로 전후 2번째 장수 총리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아무튼 총선의 압승도 그렇고 재임시절에는 수상으로서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아울러 일본 정치인 중에서도 거의 최초로 [[텔레비전]]을 통한 [[이미지메이킹]]을 선도한 인물로 꼽힌다. 일본인치고는 크고 당당한 체구(178cm로 역대 총리 2위[* 1위는 유일한 180cm [[오쿠마 시게노부]]])에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있어서인지 텔레비전을 통한 정견 표명이나 쇼맨쉽을 발휘하는 행동이 많았으며 비교적 약한 당내 기반을 이러한 [[미디어]] 정치로 상쇄했다. 후일 등장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극장]]형 정치'의 원조격인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